구미 당일치기 (feat 구미 라면축제, 신사랑방식당)

구미 당일치기 (feat 구미 라면축제, 신사랑방식당)

참고하시고 즐거운 여행 하시길 바랍니다. 이미지 한국관광공사 이 서원은 길재의 충절과 학문을 기리기 위하여 1570년선조 3에 지었습니다. 금오산에 처음 지었으며 1570년선조 8 사액서원이 되었습니다. 그 후 임진왜란 때 불타버려 1602년선조 35 부사 김용에 주도하여 지금의 경우에서 복원하였으며, 장현광이 금오서원중건봉안문을 지었습니다. 1609년광해군 1에 다시 사액을 받고 중수하였습니다. 이때 김종직, 정붕, 박영을 추향하고 이후 장현광을 추배하였습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페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중의 하나입니다.

도리사는 440년신라 눌지왕 24 고구려의 아도화상이 창건한 신라 최초의 가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라 19대 눌지왕 14년, 417년 경에 아도화상이 서라벌에 갔다가 다가올 길에, 이곳에 이르러 겨울인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해 있는 것을 보고 절을 짓고 도리사라고 했다.

1976년에는 세존 사리탑을 해체 복원하다가 금동육각사리함(국보)과 부처님 사리 1과가 발견되어 현재 직지사 성보 박물관에 위탁 소장되어 있습니다.

문화재로 보물인 화엄석탑이 있고, 아도화상동상2002년 새로 건립조성, 세존사리탑, 아도화상 사적비, 조선후기 탱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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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학정일원 소개

매학정일원 소개

매학정은 고산 황기로와 그의 사위옥산 이우가 풍류를 즐기고 학문을 연마하던 곳입니다. 고산은 서예가 뛰어나서 초성이라 하였고 옥산 역시 서매너 대가였다. 1533년에 조부의 휴양지에 정자를 지어 매학정이라 하였으며, 후에 옥산이 물려받았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1654년 옥산의 증손 학정 이동명이 중건하고 1675년 그 옆에 귀락당을 지었습니다. 이 정자는 남향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화강암으로 쌓은 3층의 기단 위에 막돌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처마 끝 서까래가 1단으로 된 홑처마에 팔작지붕입니다. 1843년 정자 뒤에 세운 매강서원은 1868년 훼철되어 주춧돌만 남아있습니다.

도선굴은 경상북도 구미시 금오산에 자리한 자연동굴로 도선 대사가 도를 깨우쳤다고 알려지는 장소다. 통일신라의 승려인 도선은 풍수지리설을 처음 출시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외에도 도선굴은 고려의 대각국사와 야은 길재 등이 찾아와 은거할 만큼 절경이지만, 오랜 세월 오르는 길이 없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1937년에서야 이를 안타깝게 여긴 당시 구미 면장과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통로를 내고 동굴 출입구 벽에 기록을 남겨 두었다고 합니다.

금오산 도립공원에서 출발해 50분 남짓이면 도선굴에 이를 수 있는데, 오르는 길이 아주 가파르고 미끄러워 조심을 필요합니다. 도선굴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시면 멀리 구미공단과 낙동강, 해평면 냉산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동굴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28m 높이의 대혜 폭포가 시원스럽게 물줄기를 쏟아낸다.

문수사의 명확한 창건연대 기록이 전하지 않아 구체적인 창건연대를 모르겠지만 1973년에 극락실전 내에 안치된 금동여래좌상에서 발견된 발원문에서 고려제 29대 충목왕 2년1346이란 기록이 있어 고려 때 창건된 사찰로 추정됩니다.

한편 발원문 발견시에 생모시, 단수포, 쌀, 보리 등 600여 점이 함께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조용한 산사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봄철에는 주위의 산과 목장에 벚꽃과 야생화가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합니다.

한채쭈꾸미 소개

한채주꾸미는 경북 구미시 형곡동에 자리 잡으며 붙잡고 있습니다. 대표 메뉴는 한채 주꾸미 볶음입니다. 주꾸미 볶음은 맵기 조절이 가능합니다. 이 밖에 도토리 전, 도토리 묵사발, 한채 샐러드, 수제 돈가스도 맛볼 수 있습니다. 음식점 외부에는 휴게 공간과 아메리카노 등의 음료를 파는 작은 카페가 있습니다. 주변에는 금오랜드, 금오산도립공원 야영장, 구미 백숙 골목 등이 있습니다.

1 채미정

채미정은 야은 길재의 충절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하여 조선 영조 44년1768에 건립한 정자입니다. 길재는 고려시대인 1386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성균관 박사를 거쳐 문하주서에 올랐습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 왕조가 들어서면서 두 왕조를 섬길 수 없습니다.하여 벼슬을 사양하고 선산에 은거하면서 절의를 지켰다. 채미란 이름은 길재가 고려 왕조에 절의를 지킨 것을 중국의 충신 백이 숙제가 고사리를 캐던 고사에 비유하여 명명한 것입니다.

채미정은 흥기문을 지나 우측에 있는 정면 3칸, 측면3칸 규모의 팔작집입니다. 뒤편에는 길재의 충절을 기린 숙종의 ””어필오언구””가 있는 경모각과 유허비각이 나란히 자리 잡으며 붙잡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매학정일원 소개

매학정은 고산 황기로와 그의 사위옥산 이우가 풍류를 즐기고 학문을 연마하던 곳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본문을 참고하세요.

한채쭈꾸미 소개

한채주꾸미는 경북 구미시 형곡동에 자리 잡으며 붙잡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사항은 본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채미정

채미정은 야은 길재의 충절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하여 조선 영조 44년1768에 건립한 정자입니다. 더 알고싶으시면 본문을 클릭해주세요.